시인방/성춘복 시인
신석초 사단 <화요회>
청개구리
2022. 12. 27. 09:04

윤정구부채시 / 김후란 시 [고향]
윤정구/ 김후란 시 [고향] *문창21년가을

부채시로 안부를 묻다
윤정구
-경기 평택 출생.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눈 속의 푸른 풀밭』. 『한뼘이라는 적멸』 등.
-저서 『한국현대시인을 찾아서』 등.
-한국시문학상, 공간시낭독회문학상. 대산창작기금 등 수상.
김후란: 신성한 문학의 숲을 지키는 점등인
옛시인들은 시와 함께 시인으로서 갖춰야 할 인품과 덕성을 중요시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은 산업화 이전인 60년대까지도 도제(徒弟)적인 형식이 배인 사숙(私塾) 형식의 개인 지도가 독학으로 자질을 나타낸 시인 후보들의 수련 과정을 통하여 ‘시인 탄생’의 역할을 수행한 것과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빼어난 문장력으로 촉망받는 힌국일보 기자 김형덕이 문화부장이었던 신석초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며 시인으로서 아름다운 이름 후란(后蘭)을 받으면서 28세에 요절한 허난설헌을 능가하는 시인이 되라는 격려를 받고, 성춘복, 홍희표, 김여정, 임성숙 등 신석초 사단의 <화요회> 모임을 통하여 ‘시와 시인’ 공부를 지속하였던 것도 60년 전 이야기이다.
스승의 뜻을 새긴 듯이 반듯한 일생을 시와 함께 걸어오신 김후란 선생님의 시세계는 초심을 그대로 지켜가는 듯, 높고, 맑고, 따스하며, 향기롭다.
“높은 곳을 지향해/ 두 팔을 벌린/ 아름다운 나무/ 사랑스런 나무/ 겸허한 나무 // …/ 때가 되면/ 다 버리고/ 나이테를/ 세월의 언어로/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는 나무 // 그렇게 자라가는 나무이고 싶다/ 나도 의연한 나무이고 싶다”(「나무」)처럼 선생의 시에는 꾸밈이나 기교를 배제한 순수하고, 정직한 언어를 통한 직정적인 서술로 감동을 준다.
“하루해가 저무는 시간/ 고요함의 진정성에 기대어/ 오늘의 닻을 내려놓는다/ 땀에 젖은 옷을 벗을 때” “내 곁으로 다가와/ 벗이 되고 가족이 되”는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실한 인연”이 있어 “어둠을 이겨낸 세상은 다시 열리”고. “나는 외롭지 않은” 것이다(「따뜻한 가족」).
“별바다 바라볼/ 창/ 꽃나무 가꿀/ 뜰” 하고 꿈꾸다가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라고 조이지 않고 풀어주는 「사랑」은 얼마나 너그러운가. “네 눈 속에 빛나는/ 사랑만 있다면/ 둘이 손잡고 들어앉을/ 가슴만 있다면”으로 맺는 「사랑」은 또 얼마나 신실한가.
“백지에 언어의 집을 짓는다/ 짓다가 잘못 세운 기둥을 빼내어/ 다시 받쳐놓고/ 저엉 성에 안차면/ 서까래도 바꾼다/ …/ 작은 기와집 한 채/ 섬돌 반듯하게 자리 잡아주고/ 흙 묻은 고무신 깨끗이 씻어놓고”(「시詩의 집」)를 읽어보면, 반듯하고, 정갈하고, 소박한 시작법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단아한 시 「난초잎 닦으며」는 “평생 물리지 않는 밥처럼” 은은한 향기와 정다운 미소를 그리고 있다.
작은 물방울 모여/ 맑은 시냇물 바위 넘어 흐르듯/ 날이 밝으면/ 어디선가 다가와 감도는 향기로움/ 난초잎 닦으며/ 유리창 퉁기는 우리 가족 정다운 목소리/ 평생 물리지 않는 밥처럼/ 난 향기 은은히/ 미소로 마주 보는 얼굴
―김후란 「난초잎 닦으며」 전문
서울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그리는 고향은 어떤 곳일까? 그곳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그리워하는 본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지막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가 서고,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깊어가는 고향집”이 지어졌다. 언덕과 창과 감나무와 어머니 기침소리로 고향이 눈에 보일 듯하다.
내 마음
나직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
지었어요
울타리는 않겠어요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
감나무 한 그루
심었어요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려요
봄
어름
가을 겨울
깊어가는 고향집
―김후란 「고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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