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성춘복 시인
성춘복 선생님과 나/ 김송배 시인
청개구리
2023. 8. 9. 20:40
성춘복 선생님과 나/ 미수 문집
[성춘복 선생님과 나/ 미수 문집]
아직도 못다한 상남(尙南) 시인의 은혜 김 송 배 1980년대 초반, 열사의 <심상해변시인학교>에서 선생님은 초대시인으로, 나는 담임시인으로 처음 만났다. 그때 지방 초등학교 전체를 빌려서 개설한 여름 시인학교는 박동규 서울대 교수가 이사장, 황금찬 시인이 교장, 김광림 시인이 교감, 이명수 시인이 교무주임을 맡고 『심상』 출신들이 각반 담임시인으로 200여명의 독자들과 여름 해변의 낭만을 만끽하면서 시와 인생을 교감하는 축제에서 선생님을 우리반 초대시인으로 모셔서 문학강의를 들었던 것이 끈끈한 우정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에 『월간문학』 출신들의 모임인 <미래시인회>가 주최하는 전국 투어의 시낭송회와 문학강연회, 문학기행에 선생님과 동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미래시인들과도 교감하게 되었고 특히 조병화, 박태진, 김영태 선생님을 비롯한 감태준(당시 『현대문학』 주간), 유한근(문협 사무국장), 윤석산(제주대 교수), 허형만(목포대 교수), 차한수(동아대 교수), 정성수, 김남환, 김현숙, 박종철 시인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문단의 초년병으로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인협회 그리고 국제펜한국본부에 입회를 주선해주어서 전국 문학행사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특히 대만에서 개최된 <아시아시인대회>에 동행하여 처음으로 외국여행의 행운도 열어주셨다. 박태진 선생님과 우리 일행은 일본 동경까지 동행하여 난생 처음으로 일본의 풍광도 만끽하였으며 그 후에도 선생님과 문협 해외세미나로 중국 상해, 북경, 백두산을 거쳐서 카자흐스탄 알마타와 러시아 쌍트베르테부르크, 모스크바 그리고 자동차로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베스트, 독일의 베를린 등을 여행하면서 나를 극진히 챙겨주셨다. 또한 그후에 어느 단체에서 <금강산 뱃길 시낭송회>에 선생님과 함께 초청되어 최초로 방문하는 북한땅 금강산행에 동승한 선실에서 지내면서 온정각, 구룡연과 만물상을 돌아보고 곳곳마다 붉은 글씨로 새겨놓은 그들의 구호에 쓴웃음을 삼킨 일 도 있었다. 또 하나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일은 내가 어느 개인 출판사에서 힘들게 근무하는 것을 보고 당시 예총회장 조경희 선생에게 소개하여 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자상함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으로 지금까지도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선생님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과 부이사장, 이사장, 예총부회장을 재임하면서 예총회관 한 건물에서 매일 뵙게 되어 자연스럽게 교분을 더욱 공고하게 교감하게 되었고 당시 문단의 대 어른들 김동리, 조병화, 김시철, 황명, 전숙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의 교류도 이루어졌다. 나는 선생님의 작품을 심취하게 되었다. 첫시집 『奧地行』은 절판이 되어 선생님 보관본을 빌려서 복사를 해서 탐독하면서 「奧地에 켜진 등불-시인 尙南」 제하에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썼다. 오랜 가뭄을 적시는 / 보슬비는 향그럽다 / 시든 풀꽃 쓰다듬는 / 따사로운 손 끝에 / 한 권의 복음서가 펼쳐지면 / 멀리서 혹은 곁에서 들리는 / 둔탁한 음절도 녹아 흐르고 / 오지에 비 젖는 날 / 숨 막히는 어린 자벌레들 / 그의 부드러운 정원에서 / 넉넉한 사랑을 손질하고 / 젖은 마음들을 말린다 // 순백의 깃 드리운 찻잔 속에 / 일렁이는 멋 가득 채우고 / 아, 내 마음 끝간 데를 몰라 / 더듬어 보는 언어들 / 저만큼 앞서 걷는 / 그림자만 따라 가느니 / 쌓인 어둠 속 우리들 사랑을 위해 / 시를 위해 / 오지를 밝힌 저 등불. 그 후에 발간한 시집(현재, 내가 보관하고 있음) 『공원 파고다』 『산조』 『복사꽃제』 『네가 없는 이 하루는』 『혼자 부르는 노래』 『해적이기 해작이기』 『혼자 사는 집』 『마음의 등불』 『봉선화 꽃물』 『내 안 뜨거워』 『길 밖에서』 『반백년 나들이』 『십삼월의 뜰』 『여든의 하루를 사는 법』 등 20여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등 수필집도 많이 펴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상남 선생님은 항상 외모를 잘 단장하는 멋쟁이 시인으로 문단에 정평이 나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눌러쓴 베레모 시인모자와 안경, Y셔츠, 목도리와 신발에 이르기까지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외형과 더불어 해박한 지식으로 문학적인 가르침에 심취한 우리 후학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면서 “성춘복 사단”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의 한국문단의 거목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후배나 제자들과 동료들의 생일이나 집안일까지도 챙겨주는 자상한 정감이 넘치는 문단 어른으로 공경의 존재로서 각인되기도 했다. 나의 딸이 중학교에 입학했다는 소문을 듣고 예쁜 책가방을 사주면서 축하해주기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편 선생님은 그림에도 일가견을 넘쳐 화가의 경지에 도달하여 틈틈이 스케치한 것들을 모아 몇 차례의 시화전도 개최하여 문단의 관심을 모은바 있다. 나는 표구된 시화를 몇 점 구입하여 지금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 문인들이 그림을 그리는 분은 그렇게 흔치 않다. 조병화 선생님과 김영태 선생님 등 몇 분이 있을 뿐이다. 어젠가 대학로에는 민주화 투쟁이란 이름 앞에 매일 최루탄이 터지고 근처 직장들이 조기에 철시(撤市)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어디선가에서는 대학생 두 명이 데모대열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에 선생님은 사회적이며 애국적인 정의감으로 어떤 글에서 어조를 높인 적이 있었다. 한편 한 재학생은 대모대로, 다른 휴학생은 전투경찰로 서로 대응한 위치에서 대모행렬과 진압경찰로서 불행을 맞이한 두 죽음을 두고 사려깊은 울분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수필집에서 읽을 적이 있다. 한강성심병원에서 있은 학생의 영결식에 동료학생들이 헌화하는 애달픈 장면을 보았다. 가슴을 쥐어뜯는 슬픈 광경이었다. 그렇다면 군산수산대의 동급학생도 애간장을 끓는 헌화의 모습이 경찰병원의 영안실에서 연출되어 마땅할 일이다. 왜 이 두 젊은 죽음이 이같이 전혀 달라야 하는지 그 답을 얻는다면 우리의 민주훈련도 꽤나 앞선 자리에 와 있을 것이 뻔하다. 그냥 감동적이다. 또한 나는 어떤 문학단체 초청으로 <성춘복 시인의 밤>에서 선생님의 시집 『혼자 부르는 노래』 에 대하여 “선생님의 순정적인 체취는 자아에서 파생되는 인식(주관)과 행위(주체)를 합쳐서 우리는 주체성이라고 한다면, 그는 ‘나’라는 대상에 대하여 능동적이며 실천적인 사유를 포괄함으로써 자아에 대응하는 객관성을 질감 높게 승화하고 있는 점이다.”라는 어줍잖은 논평을 해서 청중들의 박수는 물론이거니와 선생님께도 칭찬을 들은 일도 있었다. 이런 발표문은 그 이후에 발행된 <김송배 시론집> 『화해의 시학』에도 「自我와 對我의 주정적 화해」라는 제하로 수록하여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린 바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춘복 시학”을 새롭게 정리해서 우리 후학들이 그를 기리고 탐구하는 한편 우리 한국문학사에 금자탑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전언으로 글을 마쳤는데 얼마 전에 마침 박영배 시인이 평론집 『성춘복 시세계』를 발간하여 선생님의 작품세계의 전체를 자상하게 정리하여 조명하고 있어서 우리 후학들의 필독서로 남을 것으로 반가운 업적이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 합천에 대한 이미지를 모아서 시집 『黃江』을 발간했는데 선생님은 이에 대한 서평을 써서 『예술세계』 잡지에 게재했는데 선생님의 시론이나 시평은 지적인 해석에 정평이 나 있기도 하였다. 인간에겐 생명의 모태로서의 자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돌아가야 할 본질적 장소로 생명의 시원을 나타내고 바로 고향의 의미를 지닌다. 거기엔 탄생의 육신적 뜻 뿐아니라 정신의 요소도 들어 있어서 지표와 같은 원형의 뜻을 내포한다.--중략--김송배 시인이 그의 고향, 그의 자연, 아니 그의 정신을 단순의 연작이 아닌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네 번째 시집을 엮은 이유는 바로 이런 신념의 해석에 있다고 여겨진다. 선생님은 시를 읽고 해석하는 지적인 안목이나 시를 가르치는 교훈적인 강론은 어느 대학교수보다도 탁월하다는 문단의 여론은 우리 후학들은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병화 선생님과 김영태 선생님도 떠나버린 혜화동 『문학시대』(전 『시대문학』) 사무실을 마감하고 명륜동 사무실에서 미수(米壽)의 열정을 발양(發揚)하시는 노장(老將)으로 건강한 백수(白壽)를 향해서 오늘도 문학적인 소임에 분투하시는 선생님의 지고한 문학적인 업적과 지순한 사랑의 신뢰가 더욱 찬란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할 뿐이다 . [상남 시인 미수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