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박영배 시인

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吳鐸藩) 시인을 추모하며/ 박영배

청개구리 2023. 8. 18. 07:51

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吳鐸藩) 시인을 추모하며

 

 

늘 ─,

당신은 큰 아이였습니다

“앵두가 다람다람 열린다” 했고 “아기 다래가

앙글앙글 웃는다” 했죠

당신은 그곳에만 있었습니다

“장작난로에 참나무가 참! 참! 하면

소나무도 소! 소! 한다” 했고 “비구름이

빗방울을 흩뿌리면 쏭당쏭당

기차표를 적셨다” 했죠

당신은 때없이 애만 태웠습니다

막 다릿재를 넘었을까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온다” 했고 당신은

“왕겨빛 그리움이죠?” 했죠?

당신은 늘 ─,

겨우내 눈발이나 날려 흰 구름이 된 마을

백운白雲의 눈빛에 묻혀 있었죠?

그렇게 희디흰 당신의

말들 틈에 끼어들어

말꼬랭이 틀어잡고 나도 내 고향에나 가보려다

그만 말발굽에 호되게 차여

당신 고향께로 나뒹굴었습니다.

 

*오탁번 시선집(시인생각, 2013)

                                                                -「문학시대」 2023년 여름호

 

[출처]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