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 시인의 시집 『오징어게임』에 부쳐
이창식 시인의 시집 『오징어게임』에 부쳐
이창식 시인이 신작 시집 『오징어게임』을 상재하였다. 『어머니아리랑』(2011), 『눈꽃 사원』(2017), 『미인폭포』(2021)에 이어 펴낸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이 쉼 없이 탐구해오고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짙은 애정이 엿보인다. 시인은 대학에서 우리의 민속(民俗)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줄곧 시간성을 본질적으로 갖는 역사적 서사에서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스토리텔링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의 시편들에 민속 의식(意識)이 짙게 배어있는 것은 이러한 탐구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등단 후 7년 만에 내놓은 첫 시집 『어머니아리랑』에서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으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하였고, 『눈꽃 사원』을 통해 견고한 향토의식과 무장된 정신으로 바깥세상을 유랑하며 자신의 참 고향이 어디인지 스스로 해답을 얻은 듯하였으며, 『미인폭포』에서는 윤회의 시공(時空)에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 사랑의 숭고함과 영원성을 소환하면서 삶의 근원을 자각하고 성찰하는 몸짓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앞선 시집들이 대체로 불교 사상과 민요 아리랑이 형상화하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순수 정신을 끈질긴 생명력으로 돋아나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은유하면서 민족의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냈다면, 『오징어게임』에서는 그 지평이 초월적으로 확장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세계 각지의 낯선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시인의 시 의식이 더욱 깊고 뜨거워진 탓일 것이다.
나 고래 먹힌 고래 잡힌 고래 고래 게임이야 노름 젖 물리기 숨 쉬기 물뼉 치기 훑기 뽑기 빨기 이길 수 있어 물고기 잡기 해 봐라 달고나 해 봐라 눈새우 만들기 해 봐라 누가 이기나 뼈 남기기 그림자 남기기 꼬리잡기 집짓기 해 봐라 나 고래 이긴다 까불고 있어 인공지능한테도 지는 주제에 니들이 싸움의 달인이라고 아 진짜 고래 싸움 해 볼거야 인간 등 터지는 게임 해 볼거야.
― 「오징어게임」 부분
이창식 시인은 “살다 보면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미치도록 안달한다. ···이처럼 살다 보면 서정적으로 운다. 논다. 빠진다. 웃는다. 살핀다. 때론 서정적 자아로도 결기를 다지기 일쑤다. 이러다가 정서적 교감의 극치와 절정이 입말을 걸기 시작하면 시품이 보인다”고 말한다.(『미인폭포』 시론 중에서) 이 시인의 ‘시 쓰기’는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속태우며 울며 놀며 결기를 다지는 은유놀이를 반복하는 일인데, 자아(自我)와 대아(對我)가 하나가 되어가는 그 싸움터에서 서로 훑고 뽑고 등이 터질 때 비로소 위태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미는 시어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작품 하나가 완성된다.
『오징어게임』의 시편들은 자족적 의미구조에 안주하는 기존의 미학주의와는 달리 절제된 수사와 언술, 생략과 여백으로 사물과 주체의 시선을 밖을 향해 열어놓음으로써 언어의 다의적 상징성과 함께 새로운 삶의 간절함을 반어적으로 불러내며 여운의 감동을 발산하는 서정의 참멋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술성은 ‘사랑을 노래하며 소소한 별을 부르는 시 정원’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며 놀이의 재미를 한껏 누리고 싶은 이 시인의 소박한 소망의 표현 방식이다.
― 박 영 배(시인 · 문학평론가, 전 세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