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오늘 또 읽는 시

시월/ 나희덕

청개구리 2022. 11. 6. 08:24

시월

                                       나 희 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띄워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 뿐이어서

당신이름 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줄 당신이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사진] 포토친구(다음갤러리)

나희덕(시인, 대학교수)
 

- 1966년 2월 8일, 충남 논산 출생

-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 2019. 03.~현재, 서울과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 등단
- 시집, 「뿌리에게」 그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영랑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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