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오늘 또 읽는 시

초승달/ 이기선

청개구리 2022. 8. 11. 13:05

시조가 있는 아침

(136) 초승달

중앙일보(입력 2022.08.11 00:19)

          

초승달/ 이기선(1953∼)

 

전어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칵! 하고 내뱉으니 창문을 뚫고 날아가
저물녘 하늘에 박혔다
구름에 피가 스민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단시조가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

  미당 서정주 시인은 초승달을 ‘님의 고운 눈썹’으로 보았는데 이기선 시인은 가시로 보았구나. 그것도 목에 걸려 내뱉으니 창문을 뚫고 날아가 하늘에 박혔다니 다누리호보다 빠른 상상력의 힘이로구나. 장마 갠 저물녘 저 하늘이 왜 저리 붉나 했더니 바로 그 가시에 박혀 흘린 피가 스며서였구나. 이기선 시인은 ‘가시’를 소재로 한 시조 한 편을 더 썼다

 

   어매는 입을 가리고 나직이 칵칵 거렸다

   알뜰히 살을 발라 내 입에 넣어주고

   남은 살 빨아먹다가

   목에 걸린 가시

 

   어매 살아생전 목구멍에 박혀서

   툭하면 목을 쑤시고 가슴팍 찌르더니

   노을을 건너시던 날

   내 가슴에 박혔다  

 

  어려운 시대를 사신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러하였다. 뜨거운 눈물 없이는 읽기 어렵다. 유성규 시인은 이기선의 시조집 『불꽃놀이가 끝난 뒤』에 대해 “풍부한 어휘력이나 고도의 수사학, 특히 극도로 절제된 응축력이나 시공을 넘어선 예술적 극치”라고 평했다. 단시조가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이러할 것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이기선 시조집  『폭풍 속의 새(월간문학출판부 )』

 
 
 이기선
-충남 서산 출생,

-정치학 박사,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충북대학교 초빙교수
-시조생활 신인문학상 수상


<목차>
1
가을 호수 010 / 간장게장 011 / 개망초꽃 012 / 나물 캐는 아낙 013 / 떡국 014

마늘밭의 봄 015 / 메꽃 016 / 벚꽃 만개 017 / 복권방 018 / 봄눈 내리던 날 019

불면의 밤 020 / 새잎이 피다. 021 / 성에 022 / 어느 사찰견의 선택 023 / 어머니와 화투 024

요구르트 행복론 025 / 유채꽃 026 / 인연 027 / 홍단풍 028 / 후회란 놈 029

2
광어와 가자미 032 / 그림자 033 / 낙화 034 / 노년의 세월 035 / 대나무 숲에서 036

매화 037 / 무명시인의 소망 038 / 박꽃 039 / 벚꽃의 시샘 040 / 비 내리는 골목 041

비춰보다 042 / 산사태 043 / 산수유 열매 044 / 수박 045 / 시집이 팔렸다. 046

아파트의 여름 047 / 어머니께 드리는 기도 048 / 여우비 049 / 유전 0502020년 / 봄 051

3
거울 속의 나 054 / 골목길 작은 꽃밭 055 / 길고양이의 가을 056 / 눈물 057 / 도시 이야기 058

매미 소리 059 / 무시하다 060 / 바닷가에서 061 / 배롱나무꽃 062 / 변기를 뚫다 063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064 / 암자의 가을 065 / 어머니의 가을 066 / 이메일 불통 067

잃는다는 것 068 / 입추·1 069 / 입추·2 070 / 지렁이의 꿈 071 / 코로나 19 / 팬더믹 072 / 탱자 073

4
고모네 대나무 076 / 그대는비 077 / 금수저 달팽이 078 / 까치의 봄 079 / 내 눈 속의 어머니 080

늦가을 호박 081 / 도로에 떨어진 벚꽃 082 / 마음 083 / 뻥이요! 084 / 산사에 내리는 눈 085

소주 086 / 어느 골목식당 메뉴판 087 / 연민 088 / 이른 더위 089 / 인생 090 / 탐욕의 맛 091

팔당호의 봄 092 / 폭풍 속의 새 093 / 하루살이 094 / 할머니와 꽃씨 095

| 후기 | 어머니를 향한 몇 편의 시조 097
 
 
 

'시인방 > 오늘 또 읽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정리역에서/ 함동선  (0) 2022.11.08
시월/ 나희덕  (0) 2022.11.06
빗살무늬 상처에 대한 보고서/ 우대식  (0) 2022.07.13
견딜 수 없네/ 정현종  (0) 2022.07.12
방문객/ 정현종  (0)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