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 성 춘 복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흐트러진 강줄기를 따라
하늘이 지쳐간다
어둠에 밀렸던 가슴
바람에 휘몰리면
강을 따라 하늘도 잇대어
펄럭일 듯한 나래 같다지만
나를 떠나보내는 언덕엔
하늘과 땅 사이를 거슬려
허우적이며 가슴을 딛고 일어서는
내게만 들리는 저 소리는 무언가
밤마다 찢겼던 고뇌의 옷깃들이
이제는 더 알 것도 없는 아늑한 기슭의
검소한 차림에 쏠리워
들뜸도 없는 걸음걸이로
거슬러 오르는 게 아니면
강물에 흘렀던 마음이
모든 것을 침묵케 하는
다른 마음의 상여로
입김 가신 찬 동혈(洞血)을 지향하고
아픔을 참고 피를 쏟으며
나를 떠나보내는 강으로 이끌리어
되살아 오르는 게 아닌가
강 너머엔
강과 하늘로 어울린
또 하나의 내가 소리치며
짙은 어둠의 그림자로 비쳐 간다.
- 시집 「오지행(奧地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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