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행 전차를 타고
- 성 춘 복
버릇이었을까
얼마쯤 더 살아낼 수 있겠다며
믿음 같은 감기약 두어 알
끼니로 배 속에 밀어 넣고
남루(襤褸)를 휘날리며 전차에 오른다
때로는 찬밥 한 술
늦은 요기로 때우고
쉽게 탕진할 시간이 아까워
늘 그렇게 하듯
적당한 자리를 편안으로 깔지만
실크로드의 어느 배불뚝이마냥
사하라의 나귀 끄는 촌부(村夫)로
오늘은 온수행 전차를 타고
무임승차의 슬프고 갸륵한
내 팔자의 여로를 개척해 가노라면
종착역보다는 몇 정거장 앞서
어떤 간이역이라도 상관치 않을
그곳, 낯이 익은 그 집
지워지지 않을 얼굴이 비치면
내 가슴은 마구 뜀박질이다
몇 번 거듭해도 좋을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말
낯이 선 동네의 바로 그 사람에게
내가 타고 온 속도만큼의
꾸러미 마음을 내동댕이친다.
-제16시집 「봉선화 꽃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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