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박 영 배
오늘처럼
가을비 종일 내리는 날
술잔 훌쩍이며 먼 산 바라보지 마라
나무들 잎 줄인다고 첫눈 올 것 같다고
식은 찻잔 집어 들며 울먹이지 마라
잊었던 이름 찾지 마라
더 외로워진다
외로우면 슬픈 듯 그리워지는 법
오지 않는 사람은 오늘도 오지 않는다
심술궂은 하느님은
다 알고 있다
혼자 외로워지기 싫어
잠 덜 깬 나무들이나 슬쩍슬쩍 흔들어보고
눈발 세워 놓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린다
오늘 같은 날에는
일없이 찬비나 뿌리면서
턱 괴고 엎드려 동정만 살핀다
이런 날
철새들은 구름 속으로 날아가
돌아보지 않는 연습을 한다.
-시집 「나비 바람에 날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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