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박영배 시인

가을비/ 박영배

청개구리 2020. 9. 13. 07:19

가을비

                                     박 영 배

 

 

오늘처럼

가을비 종일 내리는 날

술잔 훌쩍이며 먼 산 바라보지 마라

 

나무들 잎 줄인다고 첫눈 올 것 같다고

식은 찻잔 집어 들며 울먹이지 마라

 

잊었던 이름 찾지 마라

더 외로워진다

외로우면 슬픈 듯 그리워지는 법

오지 않는 사람은 오늘도 오지 않는다

 

심술궂은 하느님은

다 알고 있다

 

혼자 외로워지기 싫어

잠 덜 깬 나무들이나 슬쩍슬쩍 흔들어보고

눈발 세워 놓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린다

 

오늘 같은 날에는

일없이 찬비나 뿌리면서

턱 괴고 엎드려 동정만 살핀다

 

이런 날

철새들은 구름 속으로 날아가

돌아보지 않는 연습을 한다.

 

                            -시집 「나비 바람에 날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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