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박영배 시인

나비 바람에 날려/ 박영배

청개구리 2020. 9. 13. 07:15

나비 바람에 날려

                               

 

여기 화사하게 봄꽃 피었소

이 꽃길 달리며 그대를 만나오

 

언제인가 가로수들 잎 덜어낼 때

늦단풍 몸부림을 달래주면서

문득문득 그대 생각했었소

 

태워줄 이도 태워달라는 이도 없는

조수석 문짝이 힘깨나 써야 열리더라고

 

말수 적던 내 그림자가

오늘은 옆자리에 몸 늘이고 앉아서

툭툭 농이나 던지며 이기죽대고 있소

 

산모롱이 따라 핸들 급히 꺾으면서

꽃들 틈에 숨어 낯가리는 그대를 찾소

 

호숫길이었나 소슬길이었나

캄캄하던 터널 속 겨우 헤어나면서

이어지는 꿈길 같은 꽃길에서

 

그대 언뜻언뜻 곁에 있는 것 같아

화르르화르르 꽃잎 흩날리기 전에

 

나비

바람에 날려

비어있는 자리

 

그대 옆머리에 꽂아 놓고 싶어

앙증한 꽃가지 하나 부러뜨렸소.

                                       -시집 「나비 바람에 날려」 2019

 

천경자 화백의 '사월'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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