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리에서 천둥을 동반한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이렇게 달구비가 쏟아지는 밤이면 산과 강, 나무와 새들은 어떤 모양으로 잠을 청할까. 못내 안달이 났다. 뿌연 안개를 헤치고 그들을 만나러 새벽길을 나선다. 제일 앞에 납작 엎드린 산, 그 뒤로 살포시 웅크린 산, 그 너머 무릎 세워 몸 일으킨 산, 산. 그들이 선잠 깰까봐 발자국소리까지 죽이며 다가간다. 간밤의 거센 빗발에도 산은 꿈쩍 않고 있는데 강물은 아픔을 속으로 내처 삼키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속을 뒤집었는지, 시뻘건 황토를 내뱉으며 몸을 뒤틀고 있다. 온몸으로 감싸 안았던 모든 것을 토악질하듯 내뱉으며 뒤척이고 있다. 한없이 넓고 깊게 보듬는 것에 만족하던 강도 가끔은 강한 거부의 몸짓으로 오롯이 자신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날이 필요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