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오늘 또 읽는 시

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

청개구리 2023. 10. 10. 22:19

눈 내리는 마을                          

건넛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다디단 곶감이 겁이 나서

어흥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서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

                     - 오탁번 「눈 내리는 마을」, 시인생각, 2013. 

 

오탁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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