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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김현숙 시인김현숙 시인​‘여름 한기'는 앓아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그 낭패스런 참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다.어느 여름, 나는 이별이란 기막힌 추위 앞에 서게 됐다. 확확 단내를 일으키는 바깥 바람으로도 얼어 있는 내 심사를 녹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에 쌓은 정리와 믿음을 털어내야 할 불운보다 스스로 가누어야 할 이성이나 지혜의 마비에 더욱 못 견디었다. 늘 주변에 널려있던 잠언과 감미로운 음악 속에서도 나는 고통스러웠다.​나는 그때 처음으로 술의 끊임없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 속에서 뿐이었다. 체질적으로 술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고, 또 무엇인가의 사건해결을 맑은 생각으로 풀어온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에 어긋나기도 싫었다. 당면한 상황을 피해버리기보다는 마주보며 앓는 쪽을..

존재의 뿌리 찾기: 박영배 시인의 시집 <회향廻向>에 부쳐

■ 해 설 ■ 존재의 뿌리 찾기 박영배 시인의 시집 에 부쳐 김현숙 (시인, 서울시인협회 부회장) 시는 자연과 신(神)과 인류 그 밖의 모든 삶의 이야기다. 그러나 시인 한 사람의 시는 이 모든 사실이 그의 삶과 정신을 관류(灌流)하면서 은유, 상징, 역설, 풍자 등의 시법(詩法)이란 통로를 거친 후에야 독자에게 가닿는다. 이 창작적 예술은 작가의 경험과 구성을 거친 차별성에 의해 시청자의 공감을 얻으므로, 사실만이 아닌 객관적 사물을 통해 상상적 체험을 전달하는 소임을 갖는다. 따라서 언어 또한 일방적 전달의 개념어가 아닌 독자의 체험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박영배 시인은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 후, 성균관대와 대만 국립정치대에서 경영학 석 ․ 박사를 거쳐, 세명대학교 교수와 대학..

챙/ 이영균

챙/ 이영균(1954 -) 처마 끝에 달아낸 여백이나모자 앞쪽 빛의 차단 방편이다소나기에 젖음도 피하고햇볕에 그을림도 피하고눈총의 따가움도 피할 수 있었다평생 식솔들이 의지할언덕은 못 되어주셨을지라도빛에 노출로 희망의 퇴색은 막아줄 수 있는그런 역할 아버지는 평생 감수하셨다때론 낡고 녹슨 양철처럼때론 값싸고 투명한 비닐처럼하지만 언제나 돌처럼 버텨내셨다그때마다 그 속에서는 식솔들의 살 냄새가몽실몽실 피어올랐다외부의 소리와 식솔들의 웃음소리그리고 살 냄새 그건아버지의 삶, 최고의 화음이었다 「챙」 전문 이영균 시인의 시 챙>에는 ‘소나기나 햇빛의 그을름’을 막아내는 작은 ‘챙’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최선의 사랑’을 상징하며 인류 보편적 진실을 담보한다. 그런데 이영균 시인의 눈에 비치는 ‘챙’..

문희봉 시인 칼럼

[문희봉 칼럼] 열정 ​나는 지금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길, 나만의 길, 단 한 번만 갈 수 있는 길, 다시 새로 시작해 볼 수 없는 길, 내가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찰나를 스치는 아까운 시간을 가고 있다. 결코 세월을 아니 시간, 찰나를 낭비하지 마라. 사랑하고픈 이가 있으면 사랑하라.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하라. 열정이 녹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실수조차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아오르고, 백호가 태산준령을 넘듯 지치지 않고 열정을 쏟을 때 나에게는 확실한 미래가 도래한다. 나를 끄는 이가 있으면 바로 그곳에서 열정을 녹이고 싶다. 열정이 있는 곳마다 이슈가 만들어지고 열정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신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