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시인‘여름 한기'는 앓아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그 낭패스런 참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다.어느 여름, 나는 이별이란 기막힌 추위 앞에 서게 됐다. 확확 단내를 일으키는 바깥 바람으로도 얼어 있는 내 심사를 녹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에 쌓은 정리와 믿음을 털어내야 할 불운보다 스스로 가누어야 할 이성이나 지혜의 마비에 더욱 못 견디었다. 늘 주변에 널려있던 잠언과 감미로운 음악 속에서도 나는 고통스러웠다.나는 그때 처음으로 술의 끊임없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 속에서 뿐이었다. 체질적으로 술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고, 또 무엇인가의 사건해결을 맑은 생각으로 풀어온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에 어긋나기도 싫었다. 당면한 상황을 피해버리기보다는 마주보며 앓는 쪽을 택해 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