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박영배 시인 59

샤크콜러/ 박영배

샤크콜러* 첫날은 뿔고둥 불면서 고요한 바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다음날은 견뎌야 할 급소를 짚어주며 작살은 첫발이 중요하다고 뱃머리에 올라서서 상어를 부르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마지막 날에 숨죽이던 상어는 목소리 떨리는 노랫소리에 마음을 연다고 아이가 아버지 되면 가르치리라 작살에 몸 맡긴 상어가 파도를 탈 땐 힐끗힐끗 눈물 그렁한 바다를 훔쳐보아야 한다고······ 죽어도 좋으리 네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비워둔 바다 파도를 달래는 뿔고둥 소리 달빛에 묻어온다. *인디필름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제목. 부제 ‘상어의 영혼을 부르는 자’ - 2023년 여름호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박영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흩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다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쳐 지난 작은 섬 같은 만남이지만 그 눈빛 짙어지는 건 그리움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먼 산 더듬던 눈길을 거두려다 문득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 듯 함께 한 시간이지만 그 느낌 뜨거워지는 건 그리움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별난 슬픔도 없이 가슴 울컥한 오후 기우는 해걸음을 따라 거닐다가 돌아보면 저만치 비켜서는 기억이지만 그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워 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 「문학시대」 2023년 신년호

돌아오지 않는 강/ 박영배

돌아오지 않는 강* 도시를 떠났지요 가파른 고개를 넘어 좁아지는 길로 들어서면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넌 영혼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나타나고 단풍으로 붉게 물든 앞산이 처연하게 다가오지요 어린 나를 지탱해주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슬픔이던지요 삶과 죽음이 이런 것일까요? 골바람 한 자락 지나며 나뭇잎을 떨어트릴 때 할아버지 봉분에 기대어 꽃구름의 신비에 취해 눈 감으면 저승인가 싶은데 산새 우는 소리에 놀라 눈 떠보면 다시 이승이지요 사는 일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강 하나를 넘나들었지요 강을 건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할아버지 고향을 찾았지요 그러나 떠날 때의 암담함과는 달리 돌아올 때의 그 수굿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열차를 탔지요 레일을 구르는 금속성 소리로 물비..

오리엔트 손목시계/ 박영배

오리엔트 손목시계                                                   굴다리 위 이층짜리 낡은 전당포는손목시계가 제 주인을 대신하여들락거려야 하는 고단한 노역장이었다 대학 입학선물로 새 주인을 맞이한은빛나는 오리엔트 손목시계는 밀려 있는 외상값 이천 원 때문에 마른 손목 위에서 늘 불안해했다 비좁은 자취방에서 하루를 굴리며 이 풍진세상을 함께 한탄하다가오징어튀김 한 접시와 소주 두어 병이외상장부에 또 이름을 올리던 날  손목시계는 끝내 주인 곁을 떠났다 오리엔트 손목시계는 전당포에서 오지 않는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굴다리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불어나는 외상값을 견뎌내는 일이 더 이상은 어려워진 어느 날  다급해진 마음으로 찾아간 굴다리 밑에는 여러 갈래의 화차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