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방/박영배 시인 57

청령포/ 박영배

청령포(淸泠浦) - 박 영 배 저만치 오두막 하나 앉혀 놓고 종일 북쪽 하늘만 바라보는아이 하나 보인다 깎아지른 바위절벽 아래휘감아 도는 물살이 차가워 늙은 소나무만 타고 올라흩어진 까만 상투머리 위로나뭇가지 움켜쥐고 버티는 여린 손가락에 피가 맺힌다 놀아 줄 동무는 비명소리로만 오고 미안하다 너에게 갈 수가 없다 피라미떼도 송사리떼도 이제는 강물을 거스르지 않는다애기똥풀도 왕질경이도 꽃망울을 터뜨릴 생각이 없다 배도 사공도 떠난 빈 나루에 앉아 너 대신 맘껏 통곡이나 하다 가련다얘야. - 시집 「술이나 한잔」 2017

파문(波紋)/ 박영배

박영배(시인, 문학평론가)  - 충남 공주 출생-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 성균관대학교 경영학석사, (대만)국립정치대학교 경영학박사- 세명대학교 교수 · 대학원장 역임- 세명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문학의집·서울 회원  - 「문학시대」 등단- 시집, 「기 말고사 끝난 오후」 「술이나 한잔」 「나비 바람에 날려」   시선집, 「폭풍의 노래」(성춘복·박영배 공저)     평론집, 「성춘복 시세계」    컬래버 작품집, 「너에게로 가는 중」(박영배·우희정 공저)

남한강에서/ 박영배

남한강에서 - 박 영 배 그리움은 끝내 슬픔으로 오는가 스러져가는 눈빛에 이끌려 강가의 갈잎들 물결로 일렁이고 봄빛 화사한 거리에서 어스레히 먼 산들 돌아앉은 시린 하늘 끝 스산한 들판을 거닐며 미친 듯 너를 불러보았지만 새벽을 기다리는 적막 속 어둠별로 떠가는 바람길 너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니 어찌 너를 두고 잠들 수 있으랴 오늘은 강 언덕에 올라서지만 발소리 죽이며 나를 따라 흘러오는 저 강 어둠을 거슬러 별빛보다 더 고운 물안개로 스며들 것 같은 허우적이며 가슴을 딛고 일어서는* 숨 찬 노을로 안겨 올 것 같은 저물면서 더 붉어지는 그리움이라고 밤 깊어 나를 에워 돌던 강 지쳐 잠든 갈대들 곁으로 다가와 나 대신 눈 비비며 내 앞에 서네. *성춘복 시인의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에서 빌려옴. ..

먼 길/ 박영배

먼  길                                                                                                                                                                                                                              언제인가 땅바닥에 나뒹구는꽃잎 하나 책갈피에 눕혀주었다      길은 등 뒤로만 길어지고멀어진 것들이 그리워진 날잊고 있던 시간을 찾아서 모서리 해진 책장 펼쳤을 때막 단잠에서 깨어난 듯누워있던 꽃잎이 한껏 기지개를 켰다그 여윈 자태 살짝 집어올리자꽃잎은 제 몸을 바수어부스러기 영혼이 되어 떠나갔다이젠 색 ..

황간역(黃澗驛)에서/ 박영배

황간역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아침부터 주차장은 만차다 돌아온 건지 또 떠나려는 건지 역사 안 좁은 갤러리엔늙은 백수白水*가 아렴풋한 동심童心들 데리고 놀고 있는 사이 길 건너 금강에서 건져 올린행복식당 올갱이국으로 어젯밤 숙취나 먼저 풀고옆집 두바이다방으로 옮겨와듬뿍 백설탕 넣어 이모가 저어주는 모닝커피로 입가심한다여기가 저 묻을 자리라고 막 정년 끝낸 선배 불러 내린 최 교수 그 속 굳혔는지맑은 해장국에 홀려 끊겨 있던조상님 말씀 이어보는데 내 어디 있는가아직 남아있는 커피 나 몰라라 기적 울린다. *백수: 시조시인 정완영(鄭椀永)의 호 - 「문학시대」 2019년 ..